오랜만에 움직인 몸이 비명소리를 지르는 지금, 이들의 비명을 잠재우고자 의자를 벗삼아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몸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차려 생각에 잠긴 나의 머리 속에는 이 말씀이 스쳐지나간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2020년을 맞이하고 몇 달 지나지 않은 나의 삶을 돌아볼 때,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씀이다.
그런 말이 있다.
어려울 때 보이는 모습이 참 모습이다.
불과 수년 전 나는 나의 신앙을 보며, 실망했었다. 어려움 앞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어려움 앞에 나의 방법들과 나의 생각들을 붙잡았던 그 모습에 그토록 실망했었는데, 수년이 지난 지금, 무려 신학을 배운 후였음에도 여전히 내 모습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핑계가 가득하다.
어찌 사람이 이럴 수 있을까?
어찌 하나님의 큰 은헤를 배웠고, 그 은혜를 경험하며 살았음에도 어찌 이렇게 망나니 같이 어쩌면 은혜에 은자도 모르는 그런 몰상식하고 낯짝이 두꺼운 철면피 같이 하나님 앞에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을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나의 본 모습이리라…
지난 날의 삶을 돌아보자면, 나는 잠언 16장 9절의 말씀을 뼈저리게 경험하는 삶이었다. 새로운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향해 한발짝 내딛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나에게는 좌절이라는 결과가 주어졌고, 나는 그 좌절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자 하는 욕망과 하나님 앞에 불평을 늘어뜨리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는 핑게를 대려는 욕망과 마주해야 했다.
그런데 나의 몸이 비명을 지르는 지금, 의자를 의지한채 움직이기를 꺼려하는 나의 몸을 돌아보며, 나는 하나님의 은헤를 경험한다.
지난 날의 삶에 내가 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계획했고, 나의 유익을 위해 그것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장사꾼이었다.
하나님을 이용해서 나의 유익을 추구하며, 나의 계획을 이루기를 원했던 그런 지극히 이기적이고, 지극히 파렴치한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모든 환경과 여건들은 차단되었고,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가운데 놓였을 때, 나는 비로소 나약한 존재였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헤를 실감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부디 이 깨닮음 앞에 항상 늘 겸손히 서기를 소원한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신앙인이 되기를 소원한다. 나의 생각을 넘어 존재하시며, 나의 존재를 넘어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그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의 연약함과 어리석음과 불쌍함을 토로하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소원한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무엇이고, 내가 할 수 있기를 바라는 유일한 그 무엇이며, 내가 가장 원해야 할 그 무엇이리라…
이 밤 이것을 소원하며, 비명을 지르는 이 몸들을 달래려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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