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Kristo
주님 안에서

정장 (23.7.27)

전반적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대구의 경우 여름이 너무나도 덥다.

에어컨을 켜고 있지만 강력한 전기세폭탄을 맞고 싶지 않기에 적당히 틀어 놓은 에어컨은 강렬한 햇빛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왜 교회는 늘 정장 차림으로 가야 할까? 왜 목회자는 정장을 입고 사역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회적 분위기가 넥타이를 벗고 환경보호를 위해 에어컨 언도를 낮추는 것에 힘을 쏟고 있는 이 시점에, 과연 교회는 정장과 넥타이를 고수해야 할까? 하는 것이다.

이런 소리를 하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거룩한 예배를 드릴 때 복장도 거룩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예배를 드릴 때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서 눈도 깜빡이지 말고, 숨도 쉬지 말고 쥐죽은 듯이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참 뛰어놀고, 한 참 질문하며, 자신의 생각과 사고를 넓혀가야 할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은 ‘예배 시간에 뛰지 말고, 움직이지 말고, 질문하지 마라’고 하는데, 이는 ‘정장’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으리라.

과연, 청바지와 흰티,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고 드리는 예배는 거룩한 예배가 될 수 없는가? 조금 움직이고, 조금 질문하는 것은 예배를 망치는 행위인가?

이것은 예배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복장과 예배를 연결하여, 거룩한 예배는 정장이라는 공식은 반대로 정장을 입지 않으면 거룩한 예배가 아니라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은 거룩한 에배를 드림에 있어 필요한 것으로 이렇게 소개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4)

오히려 성경은 복장이나 환경을 떠나서 “영광 진리”로 드리는 것을 예배의 가장 기본으로 말씀한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교회는 왜 복장에 목을 메고 있는 것일까?

왜 예배를 드릴 때,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기 위해 복장이 단정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넘어, 단순히 ‘정장’에 집착하는 것일까?

물론 ‘정장’이 멋있어 보인다.

정장을 입은 이병현과 마주선 김태리의 모습에서도 딱 보이는 것처럼, 정장을 입은 이병헌의 모습이 무엇인가 깔끔하고, 신사적이며, 좋은 사람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가녀린 김태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능력이 있는 사람을 이 사진에서 찾는다면 누구든지 이병헌을 지목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정장’이라는 것을 떠올릴때, “신사적인 느낌”을 떠올린다.

그래서 정장 = 깔끔한 느낌, 단정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우리나라가 처음 서양 열강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들어왔던 서양 사람들의 문화를 우월한 문화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좋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도산 안창호의 연설문에서 엿보이는데,

세 계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 서양제국이 발달된 문명을 무기로 동양을 침략해 오고 있다는 것, 일본이 서양을 흉내내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이후 한국을 침략하려 한다는 것, 나라를 잃지 않으려면 구습을 버리고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급선무라는 것…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3.1운동과 기독교 민족대표 16인』(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9), 21-22쪽에서 발췌

바로 서양의 문화를 먼저 받아들인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였을 때, 많은 지식인들은 일본을 무찌르고 국력을 기르기 위해서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서양 사람들의 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보았던 옛 정서가 정착되어 굳어지면서 지금까지도 교회에서 혹은 중요한 자리에서 복장은 정장으로 통일화 된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것은 예배와 복장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정장을 입고 반듯한 자세로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하여도 우리는 예배를 드리지 않은 것과 같으며, 아무리 복장이 허름하고, 자유분방하다 하여도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한다면 그 예배는 참된 예배가 된다.

당시 율법에 메여 안식일이 사람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휴식함으로 회복되도록 하신 그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사람들을 살리며, 회복시키는 예수님을 향하여 안식일을 어긴다고 윽박지르고 협박했던 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바로, 우리는 예배라는 것을 드림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은 바로 ‘영과 진리’ 로 드리는 것이다.

복장과 환경, 그 어떤 것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성령과 진리(말씀) 안에서 기뻐뛰며, 하나님만을 예배드릴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하며,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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