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와 선교사는 대구에서의 사역에 있어 교육, 의료, 책자판매에 집중하며 성도 양성에 먼저 힘썼습니다.
1913년 대구선교부 안의와 선교사는 동산병원이 있는 대구 동산동에서 동산고등성경학교를 개교하여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아담스 선교사, 어드만 선교사 등이 교장으로 수고하였고 해방 이후에는 곽가전 선교사, 한혜련 선교사, 안두화 선교사 등이 교장으로 봉사했다.
– “경북노회 105년사”, 154쪽.
그리고 그 결실이 바로 오늘날 현,대신대학교[구, 대구신학교] 입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구동산고등성경학교는 1959년 통합총회 이탈시 미국 장로교 선교부 관리 속에 있는 재산이므로 통합총회 경북노회가 관할하다가 영남신학교로 통폐합 운영하였다. 이때 경북노회는 대구고등성경학교를 통합 측에 빼앗기고 대구서문교회 교육관에서 공부하며 운영하였다. 이후 대구산격제일교회 교육관에서 경북고등성경학교를 운영하였다. 경북노회는 대구 지방의 교역자 양셩을 위하여 1954년 3월 16일 대구제일교회에서 모인 제 54회 경북노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대구신학교(야간) 설립에 대한 보고를 하여 3년 과정의 본과와 별과로 운영하며 대구중앙교회당에서 임시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 이후 대구신학교는 총회야간신학교 대구분교로 개명하였다가 다시 대구장로회신학교로 이름을 또다시 개명하였다. 당시에 최정원 목사가 운영하는 대구신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인가된 학교로 대구신학교 명칭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당시 대구신학교는 강의실을 대구중앙교회에서 성광교회로, 다음에는 대구제일교회로 옮겼다가 1959년 분열 이후에는 대구동신교회에서 강의를 하였다. … 1972년 대구장로회신학교는 정식으로 각종학교인가를 받고 대구신학교로 본래의 명칭을 가지게 되었으며, 1979년에는 대구시 대명동 산332번지에 있는 1,000여 평의 대지에 학교 신축건물을 지어서 정식 신학교의 기틀을 만들어 갔다. 1985년에는 경산시 백천동에 부지를 마련하고 학교 건물을 지어서 1985년 9월 1일 이전하였으며, 1986년에는 학력인정각종학교로 인가를 받았으며, 1996년에는 정식으로 대구신학대학으로 인가를 받았다. 이듬해 1997년에는 대신대학교로 오늘의 교명을 가지고 종합대학교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 “경북노회 105년사”, 154-155쪽.
비록, 1959년 통합과 합동의 분열로 인하여 그 명맥이 끊어진 듯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합동과 통합이 동일한 ‘대구동산고등성경학교’라는 신학교에서 대구의 목회자들이 교육받고, 훈련받았다는 점, 그리고 그 목회자들이 대구의 노회와 대구지역의 교회를 구성했다는 점 등을 통해서 볼 때, 대구동산고등성경학교가 통합의 분열과 함께 빼앗겼고, 합동에서 새롭게 세운 경북고등성경학교 역시 대구동산고등성경학교를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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